본문 바로가기

여행 충청북도

시인묵객이 시화로 예찬한 사인암

단양팔경 중의 하나인 사인암  (명승 제47호)은 역동 우탁에 의해 명명된 경승이다.

고려 말 정주학의 대가였던 우탁은 단양군 현곡면 적성리에서 태어났다.

충렬왕 4년에 항공진사가 되어 관직에 나간 후 여러 직에 보임되었다.

충선왕이 부왕의 후궁인 숙창원비와 통간하자 당시 감찰규정이었던 역동은 흰 옷을 입고 도끼를 든 채

궁궐에 들어가 자신의 말이 잘못되었을 때는 목을 쳐도 좋다는 이른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렸다.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생각하고 군주의 비행을 직간한 역동의 기개와 충의를 본 충선왕은 부끄러운 빛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듯 우탁은 강직한 성품을 지닌 선비였다

 

 

 

 

 

 

사인암은 마치 해금강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석벽이다.

깎아지른 듯 하늘을 향해 뻗은 수직의 바위가 거대한 단애를 이루고 암벽의 정수리에는 늘 푸른 창송이 꼿꼿이 자라고 있다. 사인암은 기품이 넘치는 장엄하고 우뚝한 자태를 자랑한다. 바둑판 모양이 선연한 암벽의 격자무늬와 푸른 노송의 어우러짐은 기묘한 조화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운계천의 맑은 물이 푸르고 영롱한 옥색 여울이 되어 기암절벽을 안고 도는 수려한 풍광으로 이름난 운선구곡의 하나다. 소백산의 정기가 모인 물줄기가 서쪽으로 흐르다 급히 돌아 북으로 굽이치고 다시 돌아 동남으로 흘러가는 운계천은 물이 옥같이 맑고 산수의 풍광이 아름답다. 이러한 운계천의 절정을 이루는 사인암은 마치 속세를 떠난 듯하며 암벽에는 역동 우탁의 글이 새겨져 있다.

 

 

 

 

 

사인암의 신비로운 선경은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을 불러들였다. 추사 김정희는 “속된 정과 평범한 느낌이라고는 터럭만큼도 없다(俗情凡韻一毫無)”며 하늘이 내린 그림이라고 경탄했다. 추사 외에도 사인암의 선경을 묘사한 시문은 매우 많다. 신광수의 〈단산별곡(丹山別曲)〉, 한진호의 《도담행정기(島潭行程記)》, 오대익의 〈운선구곡가(雲仙九曲歌)〉 등이 사인암의 비경을 담고 있으며, 김홍도와 이방운 등 조선의 이름난 화가들도 아름다운 절경을 화폭에 진경산수의 필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주차장에 세워져있는 운선구곡 사인암 표지석

 

 

 

 

 

사인암으로 걸어가는 중에 어느집 담장에 핀 넝쿨장미꽃

 

 

 

 

 

백년초 선인장 꽃이 예쁘게 피었길래 담아보고

 

 

 

 

 

 

 

 

 

 

 

사인암 가는 길의 수려한 풍경도 담고

 

 

 

 

 

계곡이 깨끗하고 참 좋아

 

 

 

 

 

 

 

 

 

 

 

계곡에서 노는 사람들 시원하겠다.  ^^

 

 

 

 

 

사찰 뒤로도 직각으로 선 바위가 멋지네

 

 

 

 

 

사찰로 건너가는 흔들다리

 

 

 

 

 

사인암에 도착하였다

 

 

 

 

 

두번째 보는데, 볼때마다 너무 멋져서 감동받고

선조들의 시인묵객들이 예찬할만하다

 

 

 

 

 

처음 왔을때는 겨울이었는데, 엄청 추운날이었다

눈이 펄펄 내리고 손은 꽁꽁 얼었고, ㅋㅋㅋ 새삼스럽게 생각나네.

 

 

 

 

 

두번째 오니 여름이어서 싱그럽고 주위 풍경이 더 수려하고 좋다

 

 

 

 

 

너무 멋진 경관이라서 사진을 한두장 찍으면 섭섭할것 같아 많이 찍었다  ^^

 

 

 

 

 

 

 

 

 

 

 

 

이렇듯 수많은 산수화의 대상이 된 사인암은 장대한 기암절벽, 늘 푸른 소나무, 벽옥 같은 맑은 물이 어우러져 사계절 내내 신록과 단풍, 설경으로 변화무쌍한 경관을 보여주는 경승이다. 사인암은 지리적 표지로 강하게 인지되는 대상이어서 《대동지지(大東地志)》와 《해동지도》를 비롯해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와 고지도에도 표기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사인암은 군의 남쪽 15리에 있다. 운계의 북쪽 들판 상류와 선암 사이를 산 하나와 흐르는 물이 가로막아 동서로 깊고 큰 골짜기를 이룬다. 계곡을 굽어보며 겹겹이 쌓인 절벽의 높이가 48~49길이고 둘레는 15~16아름이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사인암에 있는 사선대(四仙臺)와 서벽정(棲碧亭)의 기록도 남아 있다.

 

 

 

 

 

지질사적 관점으로 보면 사인암은 석회암 지대에 관입한 화강암이 하천의 반석 위에 세워진 병풍 모양의 수직절리면이다. 다양한 색깔로 드러난 수직 수평의 절리면이 마치 수많은 책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처럼 신비로운 비경을 지닌 사인암은 옛사람들은 물론 오늘날 이곳을 찾는 탐방객까지도 매료시키고 있다

 

 

 

 

 

현재 사인암에는 우탁의 글이 남아 있고 개울가 바위에는 수많은 시인묵객의 이름,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순장바둑(우리 고유의 재래식 바둑)판도 새겨져 있다. 또한 “청산의 눈 녹인 바람을 빌어다가 귀 밑의 해묵은 서리를 녹여볼까 하노라”라는 우탁의 〈탄로가(嘆老歌)〉 2수를 적은 시비와 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남한강 줄기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 지방 행정 단위였던 청풍, 단양, 제천, 영춘의 경치는 산수풍경으로는 첫손에 꼽힐 만큼 아름답다고 많은 시인묵객들이 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양팔경의 사인암은 시화의 주제로 가장 많은 대상이 된 곳이자 옛 선인들이 아끼고 사랑한 명승이라 할 수 있다.

 

 

 

 

 

뛰어난 것은 무리에 비할 바가 아니나
卓爾弗群
확실하게 빼어나지도 못했도다
確乎不拔
홀로 서도 두려울 것 없고
獨立不懼
세상에 은둔하여 근심도 없노라
遯世無憫

 

* 암벽에 세겨진 우탁의 글

 

 

 

 

 

 

 

 

 

 

 

 

 

 

 

 

 

 

 

 

 

 

 

 

 

 

 

 

 

 

 

 

 

 

 

 

 

 

 

 

 

 

 

 

 

 

사인암 방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