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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부산

해운대 달맞이 축제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음력 8월 한가윗날 밤에 호남 지역에서 널리 놀았던 여성 집단놀이. 현재는 전국적으로 이 놀이가 확산되어 굳이 호남 지역의 민속놀이라기보다는 전국화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강강술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놀이로서 가장 여성적인 아름다움과 율동미가 넘치는 민속놀이요 민속춤이요 또한 민요이다. 가무악(歌舞樂)이 일체화된 강강술래는 주로 추석날 밤에 행해지며, 지방에 따라서는 정월대보름 밤에 하기도 한다. 1966년 2월 15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강강술래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이 전술의 하나로 만들었다는 구전이 있는가 하면 민간어원적으로 해석해서 오랑캐 또는 왜구의 내침(來侵)과 관련시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은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 강강술래는 전승 현장에 따라 강강수월래, 광광술래, 광광수월래로도 부르는데, 그 중 강강수월래라고 부르는 것을 취해서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으로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고 풀이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한문의 기본적인 문법마저도 어기는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강강월수래(强羌越水來)가 아닌 다음에는 믿을 바가 못 되는 것이다. 또는 고대의 국중대회나 마한의 농공시필기에 집단적으로 추었던 원시가무(原始歌舞, ballad dance)와 연계시키기도 하고, 생성과 번식을 위한 짝짓기의 구혼 행위로서 남녀가 공동으로 연희하는 공동의례의 굿판에서 추는 춤이라는 사람도 있다.

 

 

 

 

대개 민속은 자연발생적이거나 또는 문화 전파에 의해 수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확한 연대기적 편년을 제시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오랜 전승 과정을 겪는 사이, 기능이나 성격의 복합 또는 굴절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발생론적 기원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춤은 노래에 맞춰 율동적으로 추는데 늦은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잦은강강술래로 나뉜다. 이는 노래나 춤의 빠르기에 따른 분류이기도 하지만, 한편 진행의 순서로 볼 수도 있다. 동산에 보름달이 떠오르면 마을의 넓은 마당으로 모인 여자들이 느린 가락에 맞춰 늦은강강술래를 추다가 흥이 점점 더해감에 따라 속도가 빨라져서 마침내 잦은강강술래로 이어진다.

 

 

 

 

 

그러나 강강술래는 윤무(輪舞) 형태 말고도 많은 부수적인 놀이와 노래가 있다. 따라서 강강술래는 협의와 광의의 강강술래로 나눌 수 있다. 강강술래라는 무요(舞謠)에 맞춰 여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려 돌며 추는 춤은 협의의 강강술래요, 여기에 부수된 여러 가지 놀이가 첨가되어 광의의 강강술래가 된다. 원래의 강강술래는 구성진 가락의 노래와 손과 손을 잡고 뛰고 춤추며 판을 빙빙 도는 원무였다.

 

 

 

 

강강술래는 1961년, 1964년, 1965년, 1966년에 연이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했으나 큰 상을 받지 못하였다. 1966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았고 그 후 1975년에 국무총리상을 받았으며, 1976년에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대통령상을 받았다. 1966년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당시에는 원무가 기본이고 구성진 노래를 몇 시간을 불러도 흥이 나서 쉬지 않고 노래하고 춤추고 하였다. 추수도 거의 끝이 나고 춥지도 덥지도 아니하며 달이 휘영청 밝았으니, 저절로 흥이 솟고 신바람이 나서 밤이 깊어가는 것을 잊고 순수하고 소박하게 놀 수 있었다.

 

 

 

1975년과 1976년에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면서부터 강강술래 놀이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경연대회는 입상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수식하고 과장하게 된다. 강강술래도 연출을 맡은 유능한 지도자에 의해서 첨가 과장하여 화려하게 꾸며졌다. 원래는 원무가 주이던 것이 남생이놀이,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지와밟기, 꼬리따기, 덕석말이, 쥐새끼놀이, 가마등, 문지기놀이, 실바늘꿰기, 수건돌리기, 발치기, 외따기, 춘향각시놀이 같은 여성들이 하는 놀이를 모두 참여시켜 놀이의 종합체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강강술래의 많은 사례가 보고되었다. 가락과 놀이도 그렇지만, 강강술래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불렀던 노래인 만큼 민중의 애창시로서 그 가사 속에는 민중의 삶에서 빚어질 수 있는 온갖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 용해되어 있다. 그 노래 가사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성님성님 사촌성님, 강강술래, 시집살이 어떱디까, 강강술래, 고초장초 맵다해도, 강강술래, 시집살이 더맵더라, 강강술래.” 이처럼 선후창의 형태로 한 사람이 설소리(앞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이 매김소리(뒷소리)를 받는 형식으로 춤과 더불어 불리게 된다.

 

 

 

 

 

 

 

 

 

 

 

 

 

 

 

 

 

 

 

 

 

 

 

 

 

 

 

 

 

 

 

 

 

 

 

 

 

 

 

 

 

 

 

 

 

 

 

 

 

 

 

 

 

 

 

 

 

 

 

 

 

 

 

 

 

 

2016년 (음력 1월15일) 정월 대보름날 해운대 백사장에서 펼쳐진 신명나는 달맞이축제 한마당에서 강강술래를 흥겹게 장시간 동안 하였는데

어께가 들썩들썩 거릴정도로 우리에 가락은 신명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