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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전라도

덕유산 백련사

 

백련사

덕유산 중심부 구천동계곡 상류에 자리잡은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은거하던 곳에 백련(흰연꽃)이 피어나자 짖게된 것이라고 전해온다. 무주구천동 14개 사찰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라 한다. 백련사 입구에 있는 아치형 다리 "백련교" 를 건너 일주문을 지나면 석조계단(백련사 계단 : 지방기념물 제 142호)이 나타나고 그 위에 대웅전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 밖의 문화재로 매월당 부도와 정관당 부도가 있다. 고려때 제작되었다는 삼존석불이 유명하다. 세계적인 영국 신문재벌 "로더미어" 의 부도가 이곳에 있어 명산임을 자랑하고 있다. 수많은 고승들이 이 곳에서 배출 되었다.

 

 

 

덕유산 백련사 일주문

 

 

 

 

매월당 부도(梅月當 浮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43호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종 모양의 이 부도는 매월당 설흔 스님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조선 정조 8년 (1784)에 설흔 스님의 조카인 임선행이 세웠다.

받침돌과 부도의 윗 부분에 불교의 상징인 연꽃을 화려하게 새겨 세련미를 준 것으로, 높이는 1,6m이다.

설흔 스님은 정조8년 (1784) 백련사에서 생을 마칠때까지 이 지역 불교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한 분으로,안국사 극락전 내 불상 뒤의 그림도 스님의 감독하에 조성되었다.

 

 

눈이 쌓여 계단이 묻혀 있으니 올라가는데 바짝 긴장된다.

 

 

 

 

백련사 정관당 부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02호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이 부도는 정관당 곽일선(郭一禪, 1533~1609)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연꽃을 새긴 받침 돌 위에 종 모양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정관당은 승유억불정책에 의해 침체된 조선불교의 중흥과 불교 보급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스님으로.중종 28년(1533)충남 영산에서 태어났다.

어린나이에 승려가 된 정관당은, 말년에는 서산대사로 부터 불법을 배웠으며 임성당 충언과 운곡당 충휘 등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다.

그는 특히 무주 구천동에서 선풍을 전하는 일에 온 정성을 다 하다가 광해군 1년 (1609)에 입적하였다.

 

 

 

천왕문

 

 

사천왕상

 

 

 

 

천왕문으로 들어서면 이렇게 계단이 또 있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우화루.

그 아래 문으로 들어간다.

 

 

 

옆에 범종각이 있고

 

 

 

 

또 계단을 밝고 올라가면 대웅전이다.

 

 

 

 

범종각

 

 

 

 

범종각 앞에서 보는 우화루

 

 

 

 

대웅전으로 올라간다.

 

 

 

 

백련사 주불전 "대웅전"이다.

 

 

 

 

고려때 제작 되었다고 하는 삼존석불.

 

 

 

 

 

 

 

 

 

 

 

 

 

 

 

 

 

 

 

대웅전 앞에서 보는 우화루

 

 

 

 

명부전

 

 

 

 

원통전

 

 

 

 

대웅전

 

 

 

 

원통전

 

 

 

 

우화루

 

 

 

 

 

 

 

 

 

 

 

 

 

 

 

 

 

 

 

대웅전과 원통전을 뒤로하고 나갔더니 ~

 

 

 

 

 도랑건너 삼성각이 있다.

 

 

 

 

그 아래로 요사채인듯.

 

 

 

 

절 마당 기와담장이 잠길 정도로 눈이 쌓여있다.

봄 되야 녹겠지.

 

 

 

 

 

 

 

 

 

 

 

 

 

 

 

 

 

 

 

 

 

 

 

 

 

 

 

 

 

 

 

 

 

녹음이 짙은 여름에 와도 좋을것 같고

단풍이 곱게 물들었을 가을에 와도 좋겠고

꽃피고 새싹 돋아날때 쯤 봄에 와도 좋을것 같다.

 

 

 

 

 

 

 

 

 

 

 

 

 

 

 

 

 

 

 

 

 

 

근심푸는곳

 

 

 

 

우화루 앞 보호수

 

 

 

 

천왕문

 

 

 

 

일주문을 나서며.... 방문을 마쳤다. ()()()

 

 

영국 신문왕 로더미어 부도 (1999.08.31.)

추모제 (무주=연합뉴스) 이윤승기자 = 지난해 9월1일 73세로 사망, 무주구천동에 안장된 영국의 유력지 `데일리 메일'의 회장이었던 비어 해롤드 로더미어 자작(자작(子爵))의1주기 추모식이 31일 오전 전북 무주군 덕유산 백련사(白蓮寺) 대웅전에서 있었다 .
이날 추모식은 미망인 이정선(49)씨와 백련사 주지 평상스님을 비롯 신도, 친인척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동안 불교의식으로 진행됐다.
로더미어자작이 백련사에 안장된 것은 장모인 최낙순씨의 부도제막식에 참석했던 그가 사망전 부인에게 "유골의 절반은 영국의 집 마당에, 나머지 절반은 무주 백련사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지난해 10월 무주군 설천면 덕유산 중턱 백련사 일주문 옆에 유골을 봉안하고 부도제막식을 가진바 있다.
백련사 평상주지스님은 "지난해 유골 안장 때 미망인 이씨가 일주일간 머물면서 잠자리에서도 유골을 가슴에 품고 잠을 잘 정도로 애절한 사랑을 나누어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미망인 이씨는 20대초반 뉴욕으로 건너가 모델일을 하던 중 78년 가을 자선기금 마련을 위한 무도회에서 로더미어 자작을 만나 결혼했다. 주식 액면가만 해도 4억1천300만파운드((한화 9천3백여억원)의 재산을 소유한 재력가로 알려진 로더미어자작은 1896년 데일리 메일지를 창간한 영국의 대표적인 언론계 인사이며 언론그룹 산하에 데일리 온 선데이,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등이 있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