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위치하고 있는 개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선암사 의 말사이다.
건립은 634년
고대/삼국시대
1913년 화은이 선당을 짓고, 1960년 대웅보전을 해체 복원하였다.
1993년 응향각을 복원하였고, 이듬해 일주문을 짓고 웅진전을 해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인등전 . 응향각. 응진전. 일주문과 월성대 및 요사가 있다.
이 가운데 대웅보전은 보물 제292호로 지정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대표적인 조선 중기 건물이다.
예전의 황금전이 바로 지금의 대웅보전이다.
현재는 크지 않는 사찰이지만 원효성사와 의상 대사 진표율사 원감국사등의 고승대덕이 인연을 맺었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찰로 크게 번성한바 있다. 또한 절이 자리 잡고 있는 변산은 우리나라의 8승지로 손꼽일 정도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다.
특히 절의 배경이 되는 우금암은 백제부흥 운동의 근원지로 삼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는 전설을 지니고 있으며 백제무왕 16년(676)년에 원효와 의상대사가 이곳에 와 머물면서 다시 고려시대에 송광사 출신의 원감국사가 절을 중창하여 황금전 청련각 백옥교 청혀루 금지등 화려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고려 말 조선 초를 거치면서 서해안에 왜구들로 인하여 다시 폐허가 되었던 개암사는 조선태종14년 1414년에 주지 선탄스님에 인하여 다시 중수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개암사는 다시 폐허가 되었으며 인조 15년 1636년 계호대사 대법당을 중건한 후 약 370년에 걸쳐 절 안의 많은 건물과 주변암자를 이어서 대 가람이었다. 그러나 이때 중창된 전각 중 현존하는 것은 대웅보전뿐이다.
근래에 와서는 1990년부터 현재 회주이신 혜오스님의 원력으로 전각의 중건으로 현재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현 주지 재안스님은 개암사와 불교문화의 부흥을 소원하시며 기도 정진 중이시다.
이 절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울금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고, 이 바위에는 모두 3개의 동굴이 있다.
그 가운데 원효방이라는 굴 밑에는 조그만 웅덩이가 있어 물이 괸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물이 없었으나 원효가 이곳에 수도하기 위해 오면서부터 샘이 솟아났다고 한다.
또한, 이 바위를 중심으로 한 주류성은 백제의 유민들이 왕자 부여 풍을 옹립하고, 3년간에 걸쳐 백제부흥운동을 폈던 사적지로도 유명하다.
유물로는 1689년(숙종 5)에 조성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26호인 동종과 (중건사적기)가 있다.
향불회 삼사순례 2번째 방문지 개암사.
대웅보전 뒤로 커다란 바위가 우뚝 서 있다.
대웅전 부처님
대웅전 보물제292호로 지정되어있다.
대웅전 천장의 대들보의 바랜듯한 색이 보물로 지정된 귀한 곳이다.
청림리 석불좌상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연꽃을 새긴 밭침돌 위에 책상다리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지장보살상이다.
머리 전체를 두른 두건은 어깨와 등의 일부를 덮었고, 다른 장식은 표현되지 않았다. 어께를 덮은 옷은 팔 부분에서 약간의 주름이 표현되었을 뿐이며, 전체적으로 단정한 모습이다. 손은 오른 손을 왼 손 위에 가만히 포개고, 양손의 엄지를 서로 맞댔으며, 손안에는 보주 를 감쌌다. 몸체와 코는 파손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둥근 얼굴에 자그마한 입, 지긋이 뜬 눈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지장보살의 참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누리장나무 열매
일주문은 버스로 지나쳐 오느라 담지 못하였다
개암사 주위 녹차밭과 전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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