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 사 (來 蘇 寺)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대한불교조계종 633년 (백제 무왕 34년) 혜구두타에 의해 창건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33년(무왕 34)혜구(惠丘)가 창건하여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다.
그 뒤 1633년(인조 11)에 청민(靑旻)이 대웅보전을 지어 중건하였고, 1604년(인조 18)청영(淸映)이 설선당과 요사를 지었다.
현존하는 당우 및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비롯하여 보물 제277호인 고려동종(高麗銅鐘), 보물 제278호인 법화경절본사경(法華經折本寫經), 보물 제1268호로 지정된 괘불 등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된 요사채, 설선당(說禪堂)·보종각(寶鐘閣)·봉래루(蓬萊樓),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대웅보전은 1623년(인조 1)에 완공되었는데 그 의장(意匠)과 기법이 매우 독창적인 조선 중기의 대표작이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교합하여 만들었다고 하며, 법당 내부의 벽면에 그려진 관세음보살상 등의 그림도 일품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건물은 호랑이가 화현(化現)한 대호선사(大虎禪師)가 지었다 하고, 벽화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인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가 그렸다고 하는데, 그때의 일화가 지금도 전하고 있다. 또한, 고려동종은 1222년(고종 9)변산 청림사(靑林寺)에서 만든 종인데, 1850년 땅속에서 발굴된 뒤 이 절로 옮겨졌다.
그리고 법화경절본사경은 조선 초기에 이씨 부인이 망부(亡夫)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한 글자를 쓰고 한 번 절하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필사한 것이다. 정면 6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인 설선당은 인조 때 승려의 수학 장소로 건축되었고, 봉래루는 1414년실상사지(實相寺址)에서 이건하였으며, 현재 산문(山門)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속암자로는 입구의 지장암(地藏庵)과 절 후방 1.5㎞ 지점에 청련암(靑蓮庵)이 있다. 절 일원이 전라북도 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되어 있다.
향불회 삼사순례 3번째 방문지 부안 내소사에 도착하였다
능가산 내소사는 변산반도국립공원내에 있는 유서깊은 사찰로서 내소사 입구의 일주문을 들어서면 경내입구까지 510m 반경에 약 600여 m의 전나무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 전나무숲길에는 약 150년 정도된 전나무 500그루가 잘 자라 터널을 이루고 있으며,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신록과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아름다운 설경으로 한폭의 그림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전나무 숲을 지나고 나니 단풍나무 터널이 천왕문까지 이어져 있는데
단풍이 어찌나 곱게 물들었던지 황홀경에 빠져들게 한다
붉은색이 터널을 이루고 있어 ~ ~ ~
우왕 ~ ~ ~ ㅋㅋ
어쩜 저리 붉게 물들었을까.
설레는 마음이다.
천왕문까지의 단풍이 환상이었다.
너무나 곱게 물들었어.
경내로 들어섰더니 커다란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뒤로는 능가산 관음봉이 감싸고있고
내소사 방문은 두번째이다.
봉래루 (逢來樓) 가 우리를 맞이 한다.
설선당 (說禪堂)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惠丘)가 창건한 후 1633년(인조 11) 청민대사(淸旻大師)에 의해 중건되었으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와 보수가 이루어졌다. 설선당은 청민대사가 내소사를 중건할 당시인 1640년에 승려들과 신도들의 수학정진 장소로 건축하였다 하며, 요사도 함께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 앞 마당에 중심축을 대칭으로 하여 위치한 설선당과 요사는 ㅁ자형의 특이한 평면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즉 가운데에 조그마한 마당을 두고 4동의 건물이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다. 겹처마에 2익공(翼工) 형식을 하고 있는 설선당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건물 동쪽의 툇칸은 마루이고, 남쪽의 2칸은 설선당의 부엌으로 아궁이가 시설되어 있다. 살림집 형식인 동쪽의 요사는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눈썹 지붕을 덧댄 맞배지붕이며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승방과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2층은 중층 마루로서 각종 곡물과 생활용구 등을 저장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여느 사찰에서처럼 다소 폐쇄적인 건물이나, 북쪽으로는 개방되어 동선의 이음을 원활하게 하였으며, 지붕의 이음과 높낮이가 달라 여러 건물을 조합한 느낌을 준다.
설선당 부억에있던 가마솥
대웅보전 ((보물 291호)
건축양식이 매우 정교하고 환상적이어서 가히 조선 중기 사찰건축의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앞면의 기둥 사이에는 중앙칸에 사분합(四分閤)문을, 좌우칸에 분합문을 달았는데 문짝은 초화무늬[草花紋]가 정교하게 투각된 꽃살문이다. 처마를 받친 공포는 다포계로 중앙칸에 3개, 좌우칸에 2개씩 배치되어 모두 11개의 공포로 결구되어 있다. 외3출목·내5출목으로 전통형식에서 벗어나 있으나 쇠서[牛舌]들이 겹겹으로 중첩되어 뻗어나와 있는 공포의 구성은 조선 중기 이후의 다포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건물 내부의 5개 출목에 걸쳐진 살미첨차에는 모두 연봉형을 새겼으며 소위 운궁이라는 장식적 형태로 변모되어 있다.
대들보는 앞뒤 기둥 위의 공포에 걸쳐졌는데 자연 그대로의 굽은 재목을 사용했다. 대들보 위에 동자형(童子形)의 대공(臺工)을 세워 종보[宗樑]를 받치고 우물천장을 가설했다. 대들보에서 건물 측면의 가운데 기둥에 걸치도록 각각 2개씩의 충량을 배치했다. 건물 내부의 뒤쪽에는 두 기둥을 대들보에 고정시켜 세우고 그 사이를 후불벽(後佛壁)으로 만들었다. 불단 위에는 아미타구품인을 한 불좌상과 좌우에 보살좌상을 안치했고 그 위에 닫집을 따로 설치하지는 않았다. 건물은 그다지 큰 편이 아니며, 평면은 중후한 방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에 비해 기둥 높이가 낮아 단정한 느낌을 준다.
삼층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판형(板形)의 지대석을 마련하고 그 위에 2중기단을 세웠다. 낮은 하층 기단은 저석과 중석을 하나의 돌로 하여 새겼는데 4매의 돌을 엮어 구성하였다. 하층 기단의 중석은 2개의 모서리기둥[隅柱]와 1개의 버팀기둥[撑柱]가 새겨져 있다. 하층 기단의 갑석은 2매의 돌을 동서 방향으로 나누어 구성하였는데, 낙수면이 급하고 상층 기단을 받치기 위한 2개의 몰딩(moulding : 테두리장식)이 새겨져 있다. 4매의 돌로 조립된 상층기단의 중석은 다소 높은 감을 준다. 1매의 돌로 된 상층 기단의 갑석은 그 하부에 1단의 부연(副椽)이 있고, 상부에는 탑신을 받치기 위해 2단의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몰딩이 있다. 탑신은 각 층 모두 같은 모습인데 탑신석과 옥개석을 각기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각 층 모두 모서리기둥만을 새기고 탑신의 면석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2층의 탑신부터는 체감이 심하다. 파손이 심하여 원형을 잃고 있는 옥개석은 그 하부에 3단의 층급받침이 마련되어 있고 물끊기가 파여 있으며, 반전이나 우동(隅棟)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탑신 위에는 노반(露盤)이 있고, 2개의 보륜(寶輪)이 중첩되어 있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보아 규모가 적고, 가늘고 길어 보이는 세장형으로, 신라의 전형탑을 충실히 따른 고려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하겠다.
단풍 절정기에 다녀온 전북 고창군과 부안군의 삼사순례길은 환상적이었다
마음다스림의 힐링 순례가 되어 무엇보다 기쁘고,
특히 내소사의 단풍은 황홀경에 빠질 정도로 환상적이고 아름다웠다
잊을수 없는 순례길이 된것같아 기분좋다.
'사찰 전라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층암의 모과나무 기둥 (0) | 2017.02.26 |
---|---|
구례 화엄사 (0) | 2017.02.26 |
천년고찰 능가산 개암사(開巖寺) (0) | 2016.11.09 |
청량산 문수사 (文殊寺) (0) | 2016.11.09 |
덕유산 백련사 (0) | 2015.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