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구인사는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으로 상월원각 대조사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1백67만 천태종도들의 근본수행 도량입니다. 또한 소백산 국망봉을 중심으로 장엄하게 늘어선 봉우리 가운데 연화봉 아래로 펼쳐진 연꽃잎을 연상 시킨다 하여
연화지라 불리는 이곳은 신비로운 산세로 인해 대승영지로 알려져 왔습니다. 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 흥법호국과 구세제중의 염원을 펴시기 위해 해방되던 해인 45년에 소백산 연화지에 사찰을 창건하시고
억조창생 구제중생 구인사(億兆蒼生 救濟衆生 救仁寺)라 명명하신 것이 구인사의 시작입니다. 스스로 칡덩굴을 얽어 삼간초암을 짓고 뼈를 깎는 정진 끝에 대도를 성취, 감로법우의 새교화문을 여시니,
그 미묘한 법력과 도풍덕화를 쫓아 수 많은 문법제자들이 운집했습니다. 오늘에 이르러 우리나라 최대의 관음 영험 사찰로 발돋움한 대한불교 천태종 총본산 구인사는 부처님의 영험이 많고
신비스런 기도처라 이름나 있으며, 누구든지 소원을 빌면 소원이 잘 이루어진다 하여 더욱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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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구인사 일주문.
천왕문.
대한불교 조계종 사찰과는 다른 이미지를 느끼게하는 건축물이다.
천태종은 부산에도 삼광사가 있는데, 건축물이 여기와 똑 같다.
5층건물로 지어져 웅장함을 나타내고 있다.
구인사 방문은 처음인데, 큰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에 자리하고 있는 구인사는
소백산 연화봉 자락에 길게 늘어진 건축물이 빼곡히 들어서있었다
끝까지 올라가보면 "상월원각대조사"전이 자리하고 있다
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경과함께 별천지처럼 웅장함을 니타내고 있다.
우리는 가보지 않았지만 뒤로 더 올라가면 "상월원각대조사님"의 묘소가 있다고 한다.
알았다면 갔을텐데 ... 가보지 못한게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운치를 더해주는 구인사.
상월원각 대조사님이 모셔져있는 "대조사전" .
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는 1911년 음력 11월 28일 강원도 삼척군 노곡면 상마읍리 봉촌마을 서 밀양 박씨가문 밀성대군의 후예로 태어나셨습니다. 부친이신‘박영진’거사님과 모친이신‘삼척 김씨’사이의 2대 독자로 태어나신 대조사님께서는 속명은 준동(準東)이시고 법명(法名)은 상월(上月), 법호(法號)는 원각(圓覺)이십니다.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출중하셨던 대조사님께서는 인연의 도래와 함께 큰 뜻을 품으시고 결국 15세가 되던 해 음력 3월 봄날에 출가를 결심하시게 됩니다. 스님께서는 출가 후, 수 년 동안 바랑을 메고 운수(雲水)가 되시어 명산대찰의 선지식을 찾아 교학을 익히셨는데 당시의 유명한 강백 이나 선사들은 스님의 명석한 혜지(慧智)와 뛰어난 선지(禪旨)에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일본의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스님께서는 더 이상의 운수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아시고
강원도 태백산 기슭 원효대사께서 수도하셨다는 석굴에 주석하십니다. 스님께서는 석굴에서 솔잎과 쑥 등으로 연명하시며 2년 동안 지관(止觀)수행에 매진하십니다.
그러던 중 42년 가을 큰 소식을 얻으시고 지금의 구인사 연화지에 백연화가 만개한 가운데 관세음보살님께서 미소 짓고 서 계신 것을 친견하십니다. 그해 겨울, 스님께서는 석굴을 나오시어 중국의 관음영지인 보타락가산과 천태종의 개창지인 천태산을 참배할 것을 발원하시고 중국으로 건너가십니다. 먼저 주산열도(舟山列島)에 있는 보타락가와 천태종의 근본도량인 천태산 수선사(修禪寺)를 참배하시고 수양제가 세운 국청사(國淸寺)를 찾아
큰스님들과 법담을 나누시며 장차 관음신앙과 천태종지를 한국에 펴고 다시 천태산을 찾겠다고 발원 하시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십니다. 귀국 후 스님께서는 국청사에서의 발원대로 천태의 법성(法城)이 될만한 곳을 찾아 길을 나서셨고
충북 단양군 영춘면 백자동 동학(洞壑)입구에서 그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소백산이 불연(佛緣) 깊은 곳이라는 옛 기록처럼 스님께서 찾으신 곳은 크고 작은 봉우리가 좌우로 늘어선 곳으로
그 모습이 마치 연꽃 봉오리와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곳 연화지 양지 바른 곳에 초암(草庵)을 얽어매고 석장을 내리셨는데 그곳이 바로 석굴에서 수행 끝에 친견하셨던
백연화(白蓮華) 속 관세음보살님께서 서 계셨던 자리이며 오늘날 총본산 구인사 5층 법당이 세워진 자리입니다.
스님께서는 이곳에서 세속의 왕래를 끊고 수행에만 전념하셨습니다. 며칠이고 앉는 자리를 뜨지 않으시며
추운 겨울 손발에 동상이 걸려도 끊임없이 불퇴전의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임인년(1962년) 음력 12월 28일‘한 마음 움직이지 않으면 만법(萬法)이 일여(一如)하다.’는
오묘한 경지와 ‘모든 법이 본래 무상(無常)이요 무생(無生)하다.’는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하시고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읊으셨습니다.
山色古今外 산색은 고금 밖이요, 水聲有無中 물소리는 있고 없고 중간이로다. 一見破萬劫 한번 보는 것이 만겁을 깨뜨리니, 性空是佛母 성품 공한 것이 부처님 어머니로다.
대도(大道)를 이루신 후, 천 사백 여 년 전 중국의 천태지자대사께서 천태일승(天台一乘)의 진리를 천명하셨듯이,
고려의 의천 대각국사께서 중국의 천태교관을 전지하여 고려천태의 종지(宗旨)로 삼아 교계의 새 기풍을 일으켜 선교제종(禪敎諸宗)을
다 통합하셨듯이, 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는 어려운 시기에 참된 자아의 개현, 참된 생활의 구현, 그리고 참된 사회의 실현을 위하여
대중불교의 구현, 생활불교의 실천, 애국불교의 건립이라는 새로운 불교운동을 전개하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조사님께서는 종단의 근간을 이루는 법어(法語)와 교시문(敎示文)을 차례로 내리셨는데
1971년 5월 1일에는 친히 교화의 기본과 지침이 되는 법어를 발표하셨고 이어 같은 해 10월 26일에는 종단이 나아갈 방향과
종지 그리고 종통에 관한 교시문을 발표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1400여 년 전 오랜 역사 속에 이어진 중생구제라는 천태종의 오래된 사명이 불성(佛性)의 개현, 밝은 생활의 창조
그리고 밝은 사회의 실현으로 다시금 중흥된 것입니다.
구인사 주차장 가는길.
앞에 보이는 기와지붕이 박물관.
불교천태중앙박물관.
노루궁뎅이 버섯.
상가에 있던 버섯을 찍어왔는데, 버섯같지않고 털실로 만든 고깔모자에 다는 방울같아서. ^^*
주차장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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