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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전라도

마이산 등반.

 

목요 푸른산악회 정기등반.

2008년 9월 4일

장소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 馬耳山).

등반코스 : 마이산 북부주차장 - 정자 - 마이산탑사 - 호수 - 북부주차장 까지 회기 코스.

 

7월, 8월 두번이나 불참하다보니 금새 서먹한 마음이 든다.

등반한다는 문자를 받고도 갈까? 말까? 를 놓고 망설이다가 하루전에 참석하겠다고 답문을 보낸다.

3개월만에 보는 낮익은 얼굴들을 보니 서먹함은 사라지고 반가움에 서로 인사를 나눈다.

잘 지냈는가 라는 안부인사도 빠지지 않고 챙긴다.

7시30분에 출발하여 11시 30분경 도착 중간에 사람들을 태운다고 시간이 많이 지체가 되었다.

11시40분에 등반시작인 들머리를 북부주차장 좌측으로 부터 오르기 시작을 하였다.

높은산도 아니었고 능선을 주로 타고 갔다 육산이면서 내려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정자에 올랐을때는 선발팀이 기다리고 있었다.멋진 풍경을 감상하면서.....

나야 늘~ 사진을 찍다보니 마지막 그룹에 속해서 올라간다.

오랜만에 오른 산행이 신이난다. 날씨도 너무나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이다.

 

 

정자에서 내려보는 풍경들~~

  

* 마이산 소개 *

아득한 먼 옛날 큰 죄를 지어 하늘나라에서 �겨난 한 산신부부  내외가

이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 들은 인간 세상에서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살면서 수 억겁 동안 속죄의

시간을 보냈다.  오랜 속죄의 날들을 보내고 드디어 하늘 천상계로 승천의 기회가 열렸다.

 

 

이때 남편 산신이 아내 산신에게 말했다.

"이제 하늘 나라로 다시 올라갈 때가 되었소. 그러나 우리가 승천하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면 부정을 탈것이니 사람들이 깊이 잠든 한 밤중(자시11시~01시)을

택해 승천 하는것이 좋을듯 하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다들 힘들어~ 힘들어~ 하면서도 잘 올라간다.

 

 

 

 

 

정상석이 없었고 정자가 가장 높은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회전 360도의 풍경이 다 아름답다.

 

 

 

한밤중은 너무 무섭습니다.

게다가 한 밤중에 일을 치르자면 너무 피곤 합니다.

그러니 푹 자고나서 이른 아침에 올라 가십시다. 

누가 꼭두 세벽에 잠 안자고 우리들이 승천하는 것을 훔쳐보고 있겠습니까?

 

 

 

남편산신은 일을 그르칠까 걱정 되었지만 아내 산신의 고집을 꺽지 못 했다.

오랜 속죄의 날들이 무위로 돌아갈지도 몰라 불안 했지만 이튼날 세벽에

승천하기로 마음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튼날 새벽, 산신 부부는 마침내 승천을 시도 했다. 하늘을 향해 산이 쑥쑥 솟아가고

있을때 아랫마을의  어느 부지런한 아낙네가 치성을 드리기위해 정화수를 뜨려고

우물을 찾았다가 그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다. 아낙네는 생전 처음보는 그 광경에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이 소리에 부정을 탄 산신 부부는 결국 꿈에도 그리던 승천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져 지금의 암수 마이봉이 되었다고 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편 산신은 아내 산신을 걷어차고는 두 아이를 빼앗아 버렸다는

뒷 애기가 전한다. 그래서 일까? 지금의 수 마이봉 (해발 673m) 은 두 아이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고 , 암 마이봉(667m )은 수마이봉을 등지고 앉아

한없이 고개를 떨군 채 후회하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이런 내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옛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기이한 봉우리가 하늘 밖에서 떨어지니

쌍으로 쭈빗한 모양이 말의 귀와 같구나.

�이는 몇천길이 되는데

연기와 안개속에 우뚝 하도다.

우연히 임금의 행차하심을 입어

아름다운 이름이 만년에 전하네. 

 

 

중원에도 또한 이름이 있으니

이름과 실제가 서로 비슷하도다 .

천지 조화의 교묘함은 실로 끝이 없으니

전지가 혼돈 했던 처음일을 생각 하도다.

 

_ 김 종 직 (성종때의 성리학자)

 

 

 

예 시인의 노래에 등장한 임금은 바로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이다.

태종이 남행해서 마이산 이라는 이름을 짖기 전에 이 산은 신라때 서다산

(서쪽에 많은 산들 중에 가장 아름답고 �은산!.  �았다, 섯다)

 

 

 

 

민생고를 해결하는 식사를 하기위해 자리펴는 모습.

 

 

그리고 고려 시대에는 용출산(용이 하늘로 �아 오를듯 한 기상) 이라

불렸다. 그리고 조선의 태조는 속금산(금을 묶어놓은 금덩어리산!... 땅속에서 �아난 산)

이라고 이름 붙혔다고 한다. 이중에서 서다산과 용출산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즉 서다를 이두식 표기로 볼때 그뜻은 섯다.이고

그 한문식 표현은 용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보이는 정자에서 풍경을 즐기고, 지나온 길을 다시 촬영. 너무멀기에 줌으로 당겼다.

 

 

 

마이산은 숫마이봉 과 암마이봉으로 음양을 뜻하는 암봉이라고 한다.

예전엔 등반이 허용됐었지만 훼손이 되어 휴식년제를 정하여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고 있었다.

하산을 암마이봉 아래로 둘러 내려왔다.

 

 

 

 

 

 

 

 

 

 

 

 

 

 

마이산 탑사

 

 

 

 

 

 

 

 

탑사 와 북부주차장 중간에있는 호수.

 

 

 

뒤 돌아보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뻔 했다.

어느 분이 사진 찍는걸보고 뒤돌아 보았더니 이렇게 멋진 풍경이 있었다.

 

 

 

 

 

 

 

 

 

 

 

 

 

 

 

 

 

 

백제시대때의 천년 고찰인 금당사.

 

 

 

 

마이산 금당사 일주문 .

 

 

 

이렇게 하여 9월에 진안군에있는 마이산을 등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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