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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경상남도

원동 순매원

 

     매화   박정만

 

매화는 다른 봄꽃처럼 성급히 서둘지 않습니다

그 몸가짐이 어느댁 규수처럼 아주 신중합니다

햇볕을 가장 많이 받은 가지 쪽에서부터 한 송이가 문득 피어나면 잇따라 두 송이, 세송이..

다섯 송이, 열 송이 ..이렇게 꽃차례 서듯이 무수한 꽃숭어리들이 수런수런 열립니다

이때 비로소 봄기운도 차고 넘치고, 먼 산자락 뻐꾹새 울음소리도 풀빛을 물고 와서

앉습니다 먼 산자락 밑의 풀빛을 물고 와서 매화꽃 속에 앉아 서러운 한나절을 울다갑니다.

 

 

 

 

 

 

 

 

 

 

 

 

 

 

 

 

 

 

 

 

 

 

    매화        서정주

 

매화에 봄 사랑이 알큰하게 펴난다

알큰한 그 숨결로 남은 눈을 녹이며

더 더는 못 견디어 하늘에 뺨을 부빈다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더 그립단다

매화보다 더 알큰히 한 번 나와 보아라

 

매화 향기에서는 가신 님 그린 내음새

매화 향기에서는 오는 님 그린 내음새

갔다가 오시는 님 더욱 그린 내음새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더 그립단다

매화보다 더 알큰히 한 번 나와 보아라

 

 

 

 

 

 

 

 

 

 

 

 

 

 

 

 

 

 

 

매화 앞에서  이해인

 

보이지 않게

더욱 깊은 땅 속 어둠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꽃잎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걸어 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하던 희디흰 봄햇살도

꽃잎 속에 잡혀 있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 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 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순 없지

매화도 내개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

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

 

               

 

 

 

 

 

 

 

 

 

 

 

 

 

 

 

 

 

 

 

 

 

 매화나무 앞에서    최두석

 

봄꽃 병그는 창덕궁 안

수백 년 묵은 매화나무 앞에서

임진왜란 뒤 명나라에서 보내왔다는

매화나무 앞에서

꽃을 꽃으로만 순수하게

보지 못하는 나는 난시일까

 

매화가 눈 속에 핀다는 말은

이 따스한 봄날에 분명

사대부의 사치에 지나지 않아

누군가 야유했듯

 

화양동에 송시열의 유언으로 지었다는 만동묘

만동묘를 받들던 정신의 생생한

상징처럼 보인다

 

이제 만동묘는

제사 지내는 자 발이 끊겼으되

매화나무는 시대와 전혀 무관한 듯

꽃술을 내밀고 향내를 풍기며

우아하게 온몸으로

관광 나온 양키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다

 

 

 

 

 

 

 

 

 

 

 

 

 

 

 

 

 

 

 

 매화 풍경       박종영

 

겨울 강을 건너온 매화 꽃잎 한 개

절정을 위해 상큼한 바람 앞에 서서

백옥의 여인이다

 

이내 펄럭이는 치맛자락

그때마다 하얀 속살이 좀처럼 인색하게

붉게 퍼진다

 

낡은 세월 모두 밀어내는

그대 향기 같아

그 추억의 허리춤을 살며시 당기면

 

저절로 안겨오는 그리움을 어쩌랴

 

 

 

 

 

 

 

 

 

 

 

 

 

 

 

 

  홍매화   도종환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자락 덮어도

매화 한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은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 속 홍매화 한 송이

 

 

 

 

 

 

 

 

 

 

 

 

 

 

 

 

 

 

 

 

  

설중매    반기룡

 

뼈와 살이

녹아내려도 괜찮습니다

 

정수박이에 얼음살이

용대리 황태처럼

촘촘히 박혀도 상관없습니다

 

물관부가 터져 피가

홍건히 흘러도 괘념치 않습니다

 

솔향기 부르고

피톤치드 내음 맡으며

가슴엔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을

아로새기며 추위를 견디렵니다

 

동토의 땅에 직립한 채

배냇저고리 두르고

잉걸불 같은

만개의 기쁨 누리려

내공을 쌓고 또 쌓으렵니다

 

새살 돋기 위한

인고의 세월은

능히 견딜 수 있으니까요

 

 

 

 

 

 

 

 

 

 

 

 

 

설중매  함민복

 

당신 그리는 마음 그림자

아무 곳에나 내릴 수 없어

눈 위에 피었습니다

 

꽃 피라고

마음 흔들어 주었으니

당신인가요

 

흔들리는

마음마저 보여주었으니

사랑인가요

 

보세요

내 향기도 당신 닮아

둥그렇게 휘었습니다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김용택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서 서럽게 서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출렁이는 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