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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부산

기장 만화리 차릉(車陵)

 

기장 차건신묘(차릉-車陵)

 

기장 차건신묘(차릉)는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만화리에있다.

기장을 다른명칭으로 차성(車城)이라한다.

차릉에서 유래한 기장의 가을 문화축제 이름은 차성문화제(車城文化祭)이다.

 

기장읍 만화리에 있는 고분 차릉은 우리나라 차씨(車氏)와 류씨(柳氏)의 시조인 차건신(車建申) 公의 묘라 전한다.

차릉 오른쪽 에 근세에 세위진 검은색 대리석 비문에 기제된 내용을 읽어보면  이러하다.

차건신공(車建申 公)은 신라통일시대의 인물이라한다.

제39대 소성왕이 어린 태자를 차건신공에게 부탁하였고

태자는 12세의 어린나이에 즉위 하였으니 이분이 신라 제40대 애장왕이다.

차건신은 소성왕의 부탁에따라 어린 신라제40대 애장왕을 섭정 돌보아 국정을 보는 재상인 보상역을 맡았다한다.

차건신이죽자 제40대 애장왕은 왕과 같은 예를 갖추어 장례지내고 소성왕묘에 배향하였다 한다.

신라 제39대 소성왕과 제40대 애장왕 때 재상으로써 왕의 각별한 신임을 받던 차건신공이 돌아가신 뒤 그의 무덤을 여기 기장 만화리에 쓰고,

그의 성을 따서 기장을 차씨의 성, 차성(車城)으로 명명 했다한다.

 

차건신공이 돌아 가신 뒤 그의 아들 차승색공이 아버지를 이어 애장왕을 보필했다.

그러나 10년에 숙부 김언승이 쿠테타를 조카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아 제41대 헌덕왕이 된다.

 

이후 좌승상 차승색공은 아들 사공공숙과 더불어 애장왕의 원수를 갚기위해 헌덕왕을 죽이려 했지만 기밀이 사전에 누설되었다.

유주(황해도 신천군) 구월산으로 피신하여 성을 조모의 성인 楊氏(버들양씨)를 모방하여 柳氏(버들유씨)로 바꾸어 살면서 류씨의 시조가 되었다.

공숙의 동생 사공 공도는 화를 피하여 중국 강남으로 도피하여 차씨를 중국 강남 왕씨로 바꾸어 그 자손들이 이어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차승색에서 류승색으로 바뀐 류승색의 5대손인 류차달대승공이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우자 태조 왕건은 차씨성을 회복하도록 하였다.

왕건은 류차달대승의 큰아들 효전 대광백으로 하여금 연안차씨(延安車氏)로 복성케하고 둘째아들 효금 좌윤으로 하여금 문화류씨(文化柳氏)

로 이어가게 하였다.

 

이런 연유로 지금도 차씨와 류씨는 같은혈통으로 지금도 서로 혼인을 하지 않는다.

차씨. 류씨 양성의 근원이 기장 차릉이다.

 

이상이 비문의 내용이다. 

 

 

대변항 대구사러갔다오면서 들렸던 기장군 만화리 에있는 차성에 들렸었다.

오래전 한번 다녀오고 두번째다

 

 

 

옆지기님 선대조상님이라고 지날때마다 생각이 나나보다

지나오는 길에 "차릉" 가는길 표지석이 만화리 입구에 세워져있으니 가보자고 한다

 

 

 

그래서 딸램과 함께 가보았다

딸램은 처음이다.

 

 

 

차릉은 경주에있는 릉보다 협소하긴 하지만 주위 소나무가 울창하고

들어가는 입구부터 경주에 있는 릉 못지않게 소나무 숲이 이어지고 있었다.

 

 

 

 

 

 

 

 

 

 

 

 

 

 

 

 

 

 

매암. 딸램

선대조상님께 예를 올렸다.

 

 

 

 

 

 

 

 

 

 

 

 

 

 

 

 

 

 

 

 

 

 

 

 

 

 

 

 

 

 

 

 

 

 

 

 

 

 

 

 

 

 

 

 

 

 

 

 

 

 

 

 

 

 

 

 

 

 

 

 

 

부산 기장 사람들 모르는 사람이 많을것이다

차릉이 만화리에 있다는것을 ~

큰 도로 옆 만화리 들어가는 입구에 차릉 표지석이 세워져있다

들어가서 주민들께 여쭤보면 친절하게 가르켜 주신다

 

기장군에서는 매년 10월이면 차성 문화제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축제의 장이 열리는 차성문화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