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歸路) 시인 : 정지용.
포도에 내리는 밤 안개에
어깨가 저윽이 무거웁다.
이마에 촉(觸)하는 쌍그란 계절(季節)의 입술
거리에 등(燈)불이 함폭! 눈물겹구나.
제비도 가고 장미(薔微)도 숨고
마음은 안으로 상장(喪章)을 차다.
걸음은 절로 디딜 데 디디는 삼십(三十) 적 분별(分別)
영탄(泳嘆)도 아닌 불길한 그림자가 길게 누이다.
밤이면 으례 홀로 돌아오는
붉은 술도 부르지 않는 적막(寂寞)한 습관(習慣)이여!
발열 (發熱) 시인 : 정지용.
처마 끝에 서린 연기 따라
포도(葡萄)순이 기어나가는 밤. 소리 없이.
가뭄 땅에 스며든 더운 김이
등에 서리나니. 훈훈히.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아오르노나.
가쁜 숨결을 드내쉬노니, 박나비 처럼
가녀린 머리 주사 찍은 자리에 입술을 붙이고
나는 중얼거리다. 나는 중얼거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다신교도(多神敎徒)와도 같이.
아아. 이 애가 애자지게 보채노나!
불도 약도 달도 없는 밤.
아득한 하늘에는
별들이 참벌 날듯 하여라.
엽서에 쓴 글 시인 : 정지용.
나비가 한마리 날러 들어온 양 하고
이 종잇장에 불빛을 돌려대 보시압
제대로 한동안 파다거리오다.
대수롭지도 않은 산 목숨과도 같이.
그러나 당신의 열적은 오라범 하나가
먼 데 가까운 데 가운데 불을 헤이며 헤이며
찬비에 함추름 휘적시고 왔소.
서럽지도 않은 이야기와도 같이.
누나, 검은 이 밤이 다 희도록
참한 뮤즈처럼 주무시압.
해발(海拔) 이천(二千) 피트 산봉우리 위에서
이제 바람이 내려옵니다.
다알리아 시인 : 정지용
가을 빛 째앵 하게
내려 쪼이는 잔디밭.
함빡 피어난 다알리아
한낮에 함빡 핀 다알리아.
시악시야, 네 살빛도
익을 대로 익었구나.
젖가슴과 부끄럼성이
익을 대로 익었구나.
시악시야, 순하디 순하여 다오.
암사슴처럼 뛰어다녀 보아라.
물오리 떠돌아다니는
흰 못물 같은 하늘 밑에.
함빡 피어 나온 다알리아
피다 못해 터져나오는 다알리아.
유리창(琉璃窓) 시인 : 정지용
내어다 보니
아주 캄캄한 밤.
어험스런 뜰 앞 잣나무가 자꾸 커올라간다.
돌아서서 자리로 갔다.
나는 목이 마르다.
또. 가까이 가
유리를 입으로 쪼다.
아아. 항 안에 든 금(金)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 없다. 물도 없다. 휘바람 부는 밤.
소증기선(小蒸氣船)처럼 흔들리는 창(窓)
투명한 보랏빛 누리알 아.
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부러뜨려라)
나는 열(熱)이 오른다.
뺨은 차라리 연정(戀情)스레이
유리에 부빈다. 차디 찬 입맞춤을 마신다.
쓰라리, 알연히, 긋는 음향
머언 꽃!
도회(都會)에서 고운 화재(火災)가 오른다.
반가운 블로그님들 ~ ^^*
즐거운 추석 잘 보내셨습니까.
비가 와서 보름달은 보질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 소원 한가지씩 빌었겠죠. ^^*
앞으로도 늘 건강하시고, 즐겁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_ 하이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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