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사(般若寺)
충북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백화산(百華山) 기슭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
* 연혁 *
720년(신라 성덕왕 19) 의상(義湘)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인 상원(相源)스님이 창건했다.
이름을 반야사라고 한 것은 문수보살의 반야를 상징한 것으로 이 절 주위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신앙에 기인한 것이다. 그 뒤 수차례의 중수를 거쳐서 1464(조선 세조10)에는 이 절의 숭려들이
세조의 허락을 얻어 크게 중창했다. 세조는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 들러 9일 동안의 법회를
끝낸 뒤, 혜각(慧覺) 신미(神眉) 스님등의 청으로 이 절의 중창된 모습을 살피고 대웅전에
참배했다. 그 뒤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 설화 *
세조가 복천사 법회를 마친 뒤 이 절에 들렀을 때의 설화가 전한다. 세조가 대웅전에 참배했을 때
문수 동자가 세조에게 따라오라고 하면서 절 뒤쪽 계곡인 망경대(望景臺)의 영천(靈泉)으로
인도하여 목욕할것을 권했다. 동자는 '왕이 불심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자비가 따른다. 는 말을 남기고
사자를 타고 사라졌는데 목욕을 마친후 병이 씻은듯이 낳았다. 이에 세조는 황홀한 기분으로 절에
들어와서 어필(御筆)을 하사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보관되어 있다.또한 벽계 정심사에 관한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요사채 3동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여래 좌상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모두 경주의 옥석으로 제작하여 개금한
것들이다. 이 밖의 유물로는 보물 1371호 삼층석탑과 석조부도 2기, 영위판(靈位板) 청기와 등이있다.
호랑이(山王)의 출현)
불보살님의 가피력이 아니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신비한 현상.
수천년 동안 흘러내린 파쇄석(破碎石)이 산 허리에 쌓여 자연스럽게 호랑이 형상을 이루어
그 높이만도 80여 미터요. 길이는 무려 300여 미터나 된다. 반야사 산신각 탱화에서 나툰 호랑이
의 모습 그대로 빼 닮았다고 ...
* 삼층석탑과 백일홍 *
보물 1371호로 지정된 성보로서 지대석(地臺石) 윗면의 사우에 합각선 과 기단받침을 조출 하였다.
기단부는 각 연석을 별석으로 묘각하였고, 갑석의 윗면에는 초층탑신 받침을 만들었고, 초층탑신의 동서쪽의
면석은 새로 만들었다. 또 한 배롱나무는 이조 건국당시 무학대사가 주장자를 꽂아둔 것이 둘로 쪼개져서
쌍배롱나무로 생겨났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수령은 약 500년이 되었으며 높이 7~8m 둘레 1,5m의 보호수이다.
* 반야사 문수전(文殊殿) *
반야사의 무위법사
고려 축숙왕 때, 글재주가 좋기로 소문난 18세의 황도령이 황간 동헌에 열린 백일장에 참석하게 됐다.
그런데, 물 '수' 자와 산 '뫼' 자를 몰라 낙방하고 말았다. 이에 크게 상심한 황도령은 그 길로 황간
반야사를 찾았다. 그는 그곳에서 학식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일우 스님께 학문을 배우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일우스님이 가만히 보니 황도령이 한 처녀 귀신에게 씌인 것이었다 이에 일우 스님은 황도령
전신에 금강경 5,149자를 빽빽이 써넣고 옷을 입혔다. 그날밤 황도령을 찾아온 처녀귀신, 금강경의 힘에
처녀귀신은 괴로워하다 황도령의 귀를 물어뜯고 도망쳤다. 일우 스님이 금강경 쓸때 황도령 귀만 빼먹은
것이다. 이후 황도령은 금강경 덕분에 살아났다고 생각해 출가했고, 귀가 없다하여 '무이법사' 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벼랑끝에 세워진 문수전.
문수전 앞에서 보는 풍경.
문수전에서 보는 호랑이.
영천이 흘러 반야호로 저수가 된다.
문수전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반야사 앞 영천
반야사에서 꿀맛 같은 점심을 먹고 출발합니다.
삼사순례 2번째 방문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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